'제83주년 광복절' 을 기념하며, 온라인 우체국 기념 우표 판매를 통해 '청산리 전투 (전승 100주년)' 와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 우표를 구매하였습니다.
광복절은 다른 기념일과 다르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일본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고,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군을 기억하며, 우리는 그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임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35년의 일제 치하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벌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였던 청산리 전투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군은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지에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특히 독립군은 1919년 하반기부터 국내 진입 작전을 펼쳤고, 1920년 들어서는 임시 정부를 지지하면서 북간도 지역의 독립군 단체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였습니다. 그 직후에 일어난 전투가 1920년 6월 7일에 일본군과 싸워 승리한 봉오동 전투입니다. 일본은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만주의 독립군을 없애기 위해 만주의 군벌에 압력을 가하는 외교적인 노력과 더불어 대규모 군사 동원을 계획하였습니다.
일본은 9월에 마적이 훈춘 주재 일본영사관을 습격하는 사건을 꾸민 뒤 이를 명분 삼아 중국 땅인 만주에 군대를 출동시켰습니다. 독립군은 일본군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군사력을 비축하고자 ‘북로군정서군’, ‘홍범도연합부대’ 등으로 나뉘어 북간도를 떠나 백두산 방향으로 이동하는 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당시 백두산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던 독립군을 일본군 기병 등이 추격해 오자 독립군은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싸웠습니다.
그 첫 전투가 1920년 10월 21일에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이 싸워 승리한 백운평 전투입니다. 그리고 10월 22일, 청산리 전투에서 가장 큰 싸움이었던 어랑촌 전투에서 북로군정서군은 홍범도가 지휘하는 연합부대와 일본군을 협공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이후부터 10월 26일 새벽까지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연합부대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은 각자 싸우거나 함께 힘을 합하여 싸우며 엿새 동안의 크고 작은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이기는 쾌거를 이루었고 독립군의 기본 군사력을 비축할 수 있었습니다. 6일간 치러졌던 청산리 전투는 사실상 한국 독립운동사 최대의 승전보이자 ‘대첩(大捷)’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청산리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는 독립군의 전투 정보가 실린 독립신문 제88호(1920년 12월 25일자)의 보도 기사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던 서양화가 김태(1931~)의 민족 기록화 청산리 전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제 강점기를 피해와 굴욕의 역사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 하 35년의 역사 속에도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고자 일제와 싸워 값진 승리를 거둔 기록이 존재합니다. 봉오동 전투는 독립운동사에서 ‘독립전쟁 제1회전’으로 불리는 최고의 전과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의 독립군은 규모를 키우고 조직력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독립군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격하는 국내진공작전을 벌였습니다. 1920년 6월 4일 새벽에도 신민단 소속 독립군이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진입하여 일본군 초소를 격파하고 화룡현 월신강 삼둔자로 복귀하였습니다. 일본군 남양수비대는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하였지만, 부대를 발견하지 못하자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였습니다. 이에 독립군은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일본군을 선제공격한 ‘삼둔자 전투’는 봉오동 전투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둔자 전투의 패전 소식을 접한 일본군 제19사단 사령부는 ‘월강추격대’를 편성하여 독립군 추격에 나섰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던 독립군은 6월 7일에 두만강을 건넌 월강추격대를 길림성 왕청현 봉오골로 유인하여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독립군은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반면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자 4명, 중상자 2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는 상해판 독립신문(1920. 6. 22.)과 매일신보(1920. 6. 21.)의 기사 및 서양화가 임직순(1921~1996)의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함께 구매한 선면화 (6종) 우표인데요, 특이한 모양에 '이건 꼭 사야되' 라고 되네이며,,, 구매를 했네요! 조선 시대에는 부채에 새겨진 글과 그림이 사용자의 품격을 높여준다는 인식이 있어 부채 위에 글과 그림을 써넣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선면화는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식혀주는 부채에 글과 그림을 넣어 이를 펼 때마다 흥을 돋우는 휴대용 미술품이었습니다. 지금봐도 너무 멋진 부채인 것 같아요!
선면화 6종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금강산 정양사에서 바라본 일만 이천 봉의 금강산 실경을 산수화로 표현한 '정양사도 (정선 作)'
- 근대 서화가 이도영이 쏘가리와 주전자를 그리고 고희동이 옥수수와 수박을 그린 '기명절지도 (이도영/고희동 作)'
- 반원형의 선면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백매화와 홍매화 줄기를 먹과 엷은 색으로 그린 '매화도 (신명연 作)'
- 시냇가에서 선비 세명이 편한 자세로 앉아 소나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을 담은 '송계한담도 (이인문 作)'
- 중국 북송의 문인들이 황제의 부마 왕선(王詵)의 정원에 모인 모습을 그린 '서원아집도 (김홍도 作)'
- 소나무 아래에 앉아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를 그린 '송하관폭도(이인상 作)'
낮에는 여전히 습하고, 무더위에 힘이 들지만, 어느 덧,,,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진 공기가 느껴집니다. 가을이 서서히 오고 있는 것 같아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시간은 참 빠른 것 같아요, 연초부터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참 감사하게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평안하시지요??? 이번 한 주간도 너무 고생많으셨어요, 가족 그리고 지인분들과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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